content="43d530a27c1851408e54ef343518959b7d5bdf3e" /> 중국의 3대 악녀 중 여태후(중국 최초의 황후) 이야기 : 인간돼지

중국문화이야기

중국의 3대 악녀 중 여태후(중국 최초의 황후) 이야기 : 인간돼지

육육팔팔 2021. 9. 4.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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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악녀 여태후

 

중국에는 3대 악녀가 있는데 바로 여태후, 서태후, 측천무후입니다.

오늘은 중국 최초의 정식 황후 한(漢)나라의 여태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나라 항우와 전쟁에서 승리한 유방(劉邦)이 세운 한(漢)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400년 동안 유지합니다. 중국문명의 원형은 한(漢)나라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중국 글자를 한자(漢字)로,  현재 중국의 97%를 차지하는 중국 민족을 한족(漢族)이라고 하는 것도 한나라를 시조 국가로 보기 때문입니다.

 

 

여태후(呂太后)는 바로 중국 문명의 원형이 된 한(漢)왕조의 창업 황제  한고조 유방(漢高祖 劉邦)의 부인입니다.

 

         한고조 유방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여태후의 본명은 여치(呂雉)이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에 의해 반강제로 시집을 가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은 바로 천민 출신 유방(劉邦)이었는데 백수건달로 술 마시고 싸움질하는 나날 속에서도 왕도와 패도를 논하는 등 남다른 데가 있어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치의 아버지 여공은 동네 양아치 유방을 본 후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해 딸 여치를 그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여치는 아들 효혜제 유영(劉盈)과  딸 노원 공주를 낳았습니다.

 

유방은 사건사고를 끊임없이 일으켜 여치는 남편을 대신해 옥살이를 하기도 했고 유방이 병사를 일으켜 항우와 전투를 치를 때에는 시아버지를 잘 모시고 자식들을 잘 키우는 내조의 여왕으로 억척스럽게 살았습니다.

 

또한 항우에게 포로로 끌려가 귀빈포로도 생활을 했으나, 그녀는 굉장히 담대한 기백을 가지고 있었고 야망도 매우 큰 여인이었습니다.

 

여치가 항우의 포로로 생활할 때 남편 유방은 척부인(戚夫人)이라는 첩이 있었고 척부인과의 아들 유여의(如意)도 있었습니다.

 

 

 

 

 

시련의 시간이 지나 유방은 결국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며 한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그렇게 유방은 황제가 되고 여치는 황후가 되었습니다. 유방이 한나라의 황제가 된 후 한신, 팽월, 경포 등 개국공신 들을 숙청하고 조정의 신하들을 유씨 황족들로 물갈이를 하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여치(여태후)는 우물쭈물하던 유방을 대신해  자신이 직접 모두를 숙청해버리고 여씨 일족을 조정 대신으로 등용하려고 합니다.

 

여태후가 점점 정치에 개입하는 게 싫었던 유방은 태자인 유영(劉盈)을 유약하며 자신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자신이 총애하던 척부인의 소생인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유방의 사랑을 받았던 척부인(戚夫人)도 자신의 아들 여의(如意)를 태자로 만들기 위해 온갖 모략을 일삼으며 여태후에게 대들며 서로 맞붙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대신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유방은 결국 유여의를 태자로 삼는데 실패하게 됩니다. 여태후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에게 해를 가하려고 한 척부인에게 엄청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방은 자신이 죽고 나면 본인이 총애한 척부인과 아들 유여의가 여태후에 의해 엄청난 핍박을 받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유여의를 조왕으로 삼아 다른 지방에 피해있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방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아들인 혜제가 즉위하자 여태후는 한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한 권력의 칼끝은 유방의 첩들과 자식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여태후 고향의 사당에 조성되어 있는 여태후 소상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인간돼지 척부인

 

여태후는 자신과 아들을 해하려고 했던 척부인을 불러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죠. 그리고나서 곤형을 가한 뒤 목과 발목에 쇠고랑을 채워 궁녀를 가두었던 감옥에 감금을 하고 하루 종일 쌀을 찧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또한  척부인의 아들인 유여의도 장안으로 불러들여 죽여버릴 계획을 세웠으나, 여태후의 아들 혜제가 여태후의 이런 계획을 눈치채고 장안으로 오던 이복동생 유여의를 데려와 보호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혜제가 아침에 활쏘기를 하러 나간 사이에 유여의는 독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독살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척부인은 여태후에 대한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태후는 척부인의 눈을 뽑아버리고 혀를 잘라 벙어리로 만들고 유황을 귀에 부어 귀머거리가 되게 한 뒤 팔과 다리를 잘라버립니다. 팔과 다리를 자를 땐 조금씩 잘라가며 치료를 하고 치료한 뒤 낳으면 또 자르면서 잔인하게 잘라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척부인을 측간의 돼지우리에 던져 넣어 평생 똥오줌을 받아먹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인간돼지(인체(人彘))입니다.

 

여태후는 자신의 아들 혜제에게 인간돼지로 살아가는 척부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혜제는 심하게 충격을 받아 미쳐버리게 되며 여태후에게 "사람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아들로서 천하를 끝까지 다스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뒤 정치에서 물러나 술과 쾌락에 빠져 폐인처럼 살다가 2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혜제가 죽은 후  강력한 권력으로 8년 정도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여태후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쇠약해졌는데, 지방에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던 날 길에서 무시무시한 거대한 검은 개가 달려들어 여태후의 겨드랑이를 들이받았고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 그녀는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가 죽자 여씨 일족들은 대신들에 의해 모두 숙청되거나 요직에서 쫓겨났고 한나라에서의 여씨 천하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 사마천은 여태후가 정권을 잡고 나라를 다스릴 때 천하가 평안했다고 평가했는데 권력층이나 조정, 황실에서는 권력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백성들은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나날이 살기 좋은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말했습니다.

 

여태후는 적에게는 강했지만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풀었고 대신의 귀를 기울이면서 제국의 안정을 위해 힘썼다고 합니다.

 

 


 

여태후가 이렇게 잔인하게 된 원인은 남편 유방이 천민 비렁뱅이 시절부터 대신 옥살이도 하고 정성껏 가족들 부양도 했으며 항우에게 포로도 되고 온갖 고생과 희생을 했는데,  유방이 황제가 되고 나서 여태후의 그동안의 고초를 위로해주지 않고 여자에 미쳐 본부인인 자신과 아들까지 쫓아내려 한 일에 복수심을 불태우게 되었습니다.

 

역대 중국에 있었던 권력자들의 행보와 다를 것 없이 살았던 여태후는 백수건달의 아내로 살다가 한나라 최고의 권력가의 삶을 살았고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한 여태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참고 :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