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염방과 장국영의 오누이 정(情)
홍콩을 비롯한 중국, 대만 등 중화권에서는 장국영을 '꺼거(哥哥)-오빠·형'라고 부른다. 만인의 영원한 꺼거(오빠) 장국영과 매염방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궁금해하고 있다.
매염방(梅艶芳)이 장국영(張國榮)을 처음 알게 된 때는 매염방이 2집 앨범 《적색매염방(赤色梅艶芳)》을 막 발매한 후라고 한다.
두 사람은 당시 같은 소속사에 속해 활동했었으며, 매염방이 엄청난 인기를 얻은 후, 소속사는 매염방과 장국영이 다양한 순회공연에 함께 참여하도록 했었다고 한다.
매염방은 사실 처음에는 장국영이 냉정하고 다가가기 힘든 성격이라고 느껴져 줄곧 거리를 두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둘이 한 무대에서 많은 공연을 협업하면서 겉으로는 차가워도 내면이 따뜻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장국영 또한 쿨하고 밝은 성격의 개성 넘치는 매염방에게 매료되어 점점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매체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두 사람이 연인이라고 밝히곤 했으며, 사람들은 두 사람의 애정 관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고 설왕설래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두 사람은 사랑했었던 사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자료를 토대로 입증할 방법은 없다. 1997년 콘서트에서 장국영과 매염방은 뜨거운 키스를 하며 애정 표현들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대중들은 더욱더 생각이 복잡해지고 많은 상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국영은 줄곧 우정과 사랑에 있어서 분명한 선을 그었는데 그 이유는 장국영의 마음속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당학덕(唐鶴德)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염방이 장국영을 사랑하는 지 아닌 지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일까? 어느 날 매염방이 술에 취한 후 장국영에게 : "만약 내가 40살이 되어서도 시집을 안 갔다면 나와 결혼해 줄 거야?"라고 묻자, 장국영은 소리 내어 웃더니.."나에게 그런 날은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심하고 자상한 매염방의 꺼거(오빠)
장국영이 매염방을 지극 정성으로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던 일화는 많은데, 두 사람이 함께 일하다 밖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경우엔, 어둠을 무서워하는 매염방을 위해 장국영은 그녀가 잠에 들 때까지 지켜준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잔다고 한다.
언론이 장국영을 인터뷰할 때 매염방을 조금은 좋아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장국영은 아리송하게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매염방을 사랑스런 여동생으로 아끼는 일화는 또 있다.
매염방이 술집에서 나와 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아무거나 탔는데, 알보고니 차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장국영이 이 사실을 알고 매염방이 쩔쩔맬 정도로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대중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사이라는 시선의 웅성거림이 하나는 남녀의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의도적으로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흥미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둘이 서로의 무대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연인 컨셉을 연출하며 다양한 로맨스와 낭만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겠는가!
장국영은 "무대를 가장 빛나게 해 주는 최고의 남자 게스트"이며 매염방이 자신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설 수 있다고 약속을 했으니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끈끈하고 두터운지를 알 수 있다 .
매염방이 믿고 의지하는 꺼거(오빠)
1988년 매염방이 영화 《연지구(胭脂扣)》에 출연했을 때, 원래 상대 남자 주인공이 정소추(鄭少秋)로 정해졌으나 스케줄 문제로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매염방은 특별히 장국영과 함께 연기하기를 원했는데, 영화 장면 중 남자 주인공과 친밀하고 농밀한 애정신에서 오로지 장국영만이 자신을 안아주기를 바랐으며 다른 남자 배우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두 사람은 이미 서로 각자의 소속사가 있었고, 장국영의 소속사에서는 장국영의 역할과 비중이 맘에 들지 않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매염방은 그래서 만약 장국영이 《연지구(胭脂扣)》에 출연해 함께 연기하면, 다음에 장국영 소속사의 영화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 "인질교환"이라고 언론에서 표현했다.
장국영이 매염방을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정은 '남매의 정'이나 '절친한 친구'의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한다. 장국영은 매염방의 거의 모든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2002년 극몽환(極夢幻) 콘서트에서도 공연을 했다.
콘서트에서 두 사람은 환상적인 케미로 무대를 장악하고 현장의 관중들을 매료시켰으나, 장국영은 당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심신이 이미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매염방이 편안하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매염방은 "나는 장국영 앞에서만이 모든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소녀가 되고 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오빠는 나를 영원히 보호하고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해(2003년) 사망한 오누이
장국영이 사망한 후, 매염방은 투병 중인 상황이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장국영을 위해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하여 더욱 가슴 아프게 했으며, 장례식장에서도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고통으로 어떠한 공개 발언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03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은 2003년 11월 매염방 콘서트 무대에는 없었다. 이미 자궁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매염방은 아마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연지구(胭脂扣)》의 연화가 했던 말처럼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2003년 같은 해 12월 30일 매염방은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들은 "그곳에서" 서로 만났을 것이다. 장국영은 여전히 매염방의 꺼거(오빠)이고 그녀는 여전히 장국영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다.
자료출처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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