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43d530a27c1851408e54ef343518959b7d5bdf3e" /> 행복이란 '채움과 '비움' 그리고 '나눔'

일상 이야기/세상만사

행복이란 '채움과 '비움' 그리고 '나눔'

육육팔팔 2023. 1. 3. 21:08
반응형

 

2022년 UN 지속가능발전해법 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핀란드가 1위, 한국은 59위라고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소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많은 것들을 '채움'하려고 노력하지만 또 '채움'으로 만족하지 않아 다시 '비움'을 하려고 합니다. 

 

종교나 철학의 영역에서 동·서양의 세 성인들은 '비움'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노자의 '허(虛)', 석가모니의 '방하착(放下着:내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 예수의 '케노시스(Kenosis:그리스어로  '비움'을  뜻하며 예수의 비움의 길을 의미).

 

 

 

 

 

비움의 길

 

행복=소유(have) / 욕망(want)

 

행복은 욕망을 줄이거나 소유를 늘릴 때 커진다는 것을 이 공식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소유를 늘리는 방법은 '채움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유가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욕망이 너무 크면 소유가 다른 이에 비해 많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두 번째 방법이 중요합니다. 욕망을 줄이는 것으로 '비움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공식의 분자(소유)와 분모(욕망) 중 어떤 것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현저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편하게 행복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욕망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브릭만과 그의 동료들은 거액 복권 당첨자와 척추 손상 환자들의 삶을 조사했습니다. 대다수의 복권 당첨자들은 당첨 초기에 행복감이 급격하게 상승했지만, 1년이 되지 않아 행복도가 당첨 이전 수준 또는 그 이하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어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척추 손상 환자들은 초기에는 절망감에 휩싸여 자살까지도 생각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행복도가 서서히 회복되어 나중에는 복권 당첨자들보다 더 행복도가 올라갔습니다. 소유를 늘리는 채움의 삶보다 욕망을 줄이는 비움의 삶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무소유의 메시지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에서는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아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없어선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며. 소유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미니멀리즘' 정신이 무소유의 메시지라고 합니다.

 

 

과시적 소비는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지나치게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지금은 자꾸 비우고 싶어 합니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이 행복을 주기보다 고통을 안겨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캐나다 경제학자 커티스 이튼 교수와 뮤케시 에스워런 교수는 '부자가 될수록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핵심내용은 일정 수준 부를 축적한 다음부터는, 더욱 부가 늘수록 오히려 박탈감만 커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이 많아질수록 더욱 과시적 소비를 하게 되는데, 과시적 소비는 결국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입니다.

 

채움과 비움 그리고 나눔

 

행복이란 소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채움'을 한 우리가  소유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움'을 실천하며  '나눔'을 통해 뿌듯함과  흐뭇함을 체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참고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매경 이코노미 '비움의 미학' 기사